갓생이 영 안 살아지나요? ⟪ 2024 봄호 | 꾸준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 ⟫
-- 이면을 펴내며 --
[ 1 ] 『 수련 대신 수면. 나의 (게으른) 요가 이야기 』
[ 2 ] ˖◛⁺˖ (벌써) 실패한 여러분의 새해 결심은?
[ 3 ] ♪ 듣는이가 🎼
[ 4 ] 『 벼락치기의 신, xNFP의 필승법 』
[ 5 ] ˖◛⁺˖ '갓생' 말고 ‘내 삶’사는 이야기 ☜
미완성 일출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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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생’ 말고 ‘내 삶’ 사는 이야기 ˖◛⁺˖
갓생, 오운완, 미라클모닝
위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효율과 생산성으로 똘똘 뭉친 일상을 담은 신조어들이라 할 수 있겠다. 신적이고 (god) 기적적이어서 (miracle)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삶의 형태는 요즘 사회에서 드높이 칭송된다. 이들을 키워드로 내세운 수많은 유튜브나 SNS 게시물들이 입증하는 바이다.
그러나 모범적이고 완벽한 이야기는 세상에 이미 많다. 신적이고 기적적인 매일의 연속에서 비껴나간 이들의 이야기를 추려보았다. 일곱 번 다짐하고 여덟 번 실패하고 아홉 번 일어나는 이. 도착지의 찬란함보단 가는 길의 고즈넉함을 바라보는 이. 가슴 깊이 품은 꿈에 이따금 물을 주는 이.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삶 대신 그저 내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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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열심히 살아보려고 다짐했건만, 꾸준히 실천한 건 누워있기 뿐. 맘먹고 일어나 다이어트 체조를 해보지만, 빠지는 건 내 무릎 연골뿐. 인스타에 있는 예쁜 언니들 보다가 거울을 보면, 웬 맘모스?
나도 남들처럼 예쁘게 살아가고 싶어. 벚꽃이 피면 남자 친구와 손잡고 걸어 다니고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가끔은 카페에 가서 사람 구경도 하고 싶어.
하지만 나에게 있는 건 오직 먹여 살릴 몸뚱아리 하나. 남자 친구도, 친한 친구도 없어. 돈도 없지.
나는 왜 이렇게 살까? 매일 똑같은 하루의 끝에는 집콕이야. 가는 여행지라곤 방콕밖에 없어. 당장 SNS만 켜도 갓생러들이 넘쳐나는데, 휴대폰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이 초라해 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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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가진 거라곤 쥐뿔도 없는 학생이라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쥐뿔도 없는 게 맞는 거더라?
너무 자책할 필요도, 스스로를 하찮게 여길 필요도 없었어. 이유도 없이 내가 나를 갉아먹은 거 같아 미안해. 한때는 무기력한 내 모습이 싫었는데, 이젠 받아들이기로 했어. 종교를 믿기보단 나를 믿기로, 남들과 비교하기보단 공부에 집중하기로.
솔직히 말하자면, 쉽지가 않아. 공부하려 책만 펴면 잠이 솔솔 와. 스스로를 믿을 때는 문제 찍을 때 뿐이고.
그래도 변화는 한 번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까 계속 노력하려고. 아니면, 그냥 하려고.
원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잖아. 언젠간 나도 밝게 빛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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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사실 완벽이라는 건 완성이라는 건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멀쩡한 사람들은 잘 해내고 싶어 하겠지 그러다 아름다울 수 있었던 생각 한 장이 두뇌처럼 구겨져 태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떨어지는 곳은 쓰레기통
더 이상 반대말이 아니다 어쩌면 완성이 미완성을 만드는 것 같아 그러나 미미해 보이는 것들은 항상 아름다움을 숨겨놓는다 저 한 글자 단어의 뜻이 틀릴 수도 있다고 그렇게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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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더 잘하려고 하는 것이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더 나은 결과로 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작아 보이는 과정들이 어쩌면 결과보다 나은 선물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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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마음
아침에 나는 68%, 스타벅스 한중간에 고동색 테이블에 앉아있다.
이른 시간, 높은 천장 아래 뜨문뜨문 자리한 영혼들은 그들의 세상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공책, 드로잉 패드, 책 한 권, 그리고 노트북 속 편집 프로그램으로 그들의 하루를 시작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몰입 속 응축된 시공간 사이로 희미한 레트로 재즈 노래와 커피 머신 소리가 퍼진다.
그리고 나는 하얗게 빈 화면을 보고 있다.
며칠 만에 다시 일곱 시 기상에 성공하고, 가방 속 두 개의 랩탑 중 하나를 펼치는 데까지 성공했다. 커피와 베이글까지 세팅을 완료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다만, 내 손가락은 공중을 휘저을 뿐이다. 겨우 치워버린 핸드폰 속 “인형을 물고 자는 강아지를 위한 뜻밖의 솔루션!” 쇼츠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니, 안 돼. 이젠 정말 해야 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결국 물러서면 안 된다는 걸 인정하자 무능감과 불안과 괴로움이 앞다투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글을 쓰기로 한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나는 그 많은 시간을 앉아 있는 걸로 대체했다. 쓰고 싶은 말이 있는 걸까. 단어와 문맥과 이야기의 부족함이 나를 타자 앞에 멈추게 한다. 또는 꽉 차 있다고 생각했던 내 안이, 무언가 하나둘 꺼내려 할수록 훵 비어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일까. 글쓰기는 나를 초라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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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란하게 화면 속 하얀 페이지를 노려보고 있으면, 꼭 핸드폰이 진동한다.
ㄴ 율님, 오늘까지 보고서 제출 해주시는 거죠? ㄴ 율님, 이 작업은 어떻게 진행할까요? ㄴ 율님, 검증을 위해 오후에 리뷰 부탁드립니다.
야근할 일이 생길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내 메신저 알림을 훑어본다. 다행이다. 새로운 업무는 생기지 않았다. 그들 몰래 아직 다 꺼내지 못한 말들을 타자 위로 마무리 짓고 오늘의 할 일을 적은 메모지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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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를 지운다. 나만 ‘바쁘다 바빠 현대인’이라 힘든 걸까. 조금 속상하고 매우 바쁘기 때문에 나는 가방에서 두번째 랩탑을 꺼낸다. 뒤늦게 재택 업무를 시작한다.
매일 이 일을 하기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문학소녀는 아니었지만, 이야기 속 세상을 동경했다. 어렸을 땐 만화가를 꿈꾸었고, 영문학 수업을 제일 좋아했다. 하지만 내 글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든지, 턱없이 부족했다 느꼈던 언어 감각이라든지, 온갖 핑계와 상황이 그럴듯하게 맞물려 나를 비껴나갔다. 글쎄, 사실 생각해 보면, 재능이 없다며 일찍이 포기했던 건 그만큼의 관심이었을까.
68%의 글쓰기.
내 다이어리 속 매일 글쓰기의 완료율은 68%이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랩탑 두 개를 가방에 넣고 새벽의 연빛을 받아 반짝이는 길을 걸어간다.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두터운 목도리 사이로 어쩐지 생기 있고 비몽사몽한 표정들이 보인다. 이내 한 초등학교 앞, 신호가 아주 긴 사거리를 마주한다. 교차로 앞에 서서 잠시 일과를 정리하던 생각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본다.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한 쇠기둥 위에 앉은 눈 오리가 함께 신호를 기다려준다.
그렇게 오랜 길을 걸어 스타벅스에 들어간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마음을 가지고, 나는 아침 스타벅스에 앉아 과거에 어리석음과 잔인한 불안을 마주한다. 그리고 이 시간들이 모여 혹시나 미래에 올지 모르는 일치감을 꿈꾼다. 시작은 여느 작가가 그러듯이 엄마와 아빠에 대한 이야기들로, 내 경험을 꺼내가며, 나의 서사를 조금씩 조각모음 하고 있다. 몇십 퍼센트의 걱정과 의무와 모순에서 자유롭길, 이러면서도 사실 몰래 대박작가의 꿈을 꾸는 나에게서 자유롭길, 조금 소망한다. 모순적인 아침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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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감자탕
나이는 들었는데 철이 안들어서 매일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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