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꾸준히’ 하려면 꾸준할 빈도를 정해야 한다. 일주일에 n번 운동하기, 매일 7시에 일어나기 등등. 초 단위로 움직이는 시계에 맞춰 우리의 일정을 만들고 의심 없이 모두와 똑같은 시계를 따르며 큰 혼란 없이 함께 산다.
부작용은 없을까? 저마다 자기 손목에 잘 맞는 시계가 다른 것처럼 저마다 편한 시간의 속도도 다르다. 가끔은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는 템포로 뛰기보다 나만의 템포로 걷는 게 중요할 때도 있다. 아침 8시, 점심 1시, 저녁 6시 매일 시간에 맞춰 먹는 대신 그때그때 배가 고플 때 밥을 먹는 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고, 매일 아침 똑같은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것보다 창문에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자연스럽게 눈을 뜨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다. 사실 세상에는 여러 “시계”가 있다.
나와 가장 잘 맞는 시계를 찾아보자. 모두가 따르는 기존의 시계와는 다른 시계를.
시침만 있는 시계
낮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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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사이에서만 움직이는 시계
하지만 이 시계들은 여전히 우리가 따르는 절대적인 시간의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주관적인 시간의 느낌을 활용한 시계가 있다면 어떨까?
재미있을 때 더 빠르게 가는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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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하는 순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시계
시간이 좀 흘렀나요?
항상 현재에 머무는 시계
내게 맞는 시계는 뭘까?
안드레슈타임
끊임없이 움직이는 현재에 억지로 끌려가는 대신 자신만의 편안한 속도를 찾고 있는 사람
필요한 만큼의 겨울잠을 자고 난 뒤 어느 순간 깨어난다. '하루'는 내가 일어나서부터 잠에 들 때까지로 정의된다. (그러므로 ‘하루’의 시작은 동시에 ‘봄’일 수도 있겠다.)
세상에는 시계가 없다. 해와 달이 여럿 떠 있지만, 언제 뜨고 지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림자의 길이는 눈을 크게 떴다 흐리게 떴다 할 때마다 제멋대로 변한다. 꿈속에서 어떤 물체를 가만히 응시했을 때 어떤 이유에선지 그것을 전혀 특정할 수 없는 것처럼...
친구들은 일어났는지 자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우연히 깨어있는 시간이 겹치는 친구가 보이면 반갑게 인사를 할 뿐이다. 아직 자고 있는 친구를 위해 안부의 편지를 남기기도 한다. 그들이 언제 일어나서 읽어볼지는 모르는 일이다.
내가 사는 집에는 아득히 높은 한 벽면이 서랍들로 가득 차 있다. 잠에서 깬 후 할 일은 한 가지이다. 나의 모든 관심사들이 분류되고 정리되어 있는 넓고 깊은 서랍들 중 하나를 고른 후, 그 안에 펼쳐진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깨어난 그날에 하고 싶어진 일, 바로 그 일을 한다. 오래 전 닫아두었던 서랍장 속의 그림을 그리는 일일 수도 있고, 닫힌 지 얼마 되지 않은 서랍장 속 편지에 회신하는 일일 수도 있다.
하고 싶은 만큼, 몰두하고 싶은 만큼, 진이 빠질 때까지 원하는 일을 하고 난 뒤에 물도 마시고, 밥도 지어 먹는다.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다시 잠에 든다. 하루는 그제야 저문다.
어렸을 적부터 모두가 자고 있을 때 나만의 시간은 시작되곤 했다. 모두가 잠이 든 밤에는 시간이 끝없이 펼쳐져서 곡선으로 마구 휘어지고 주머니 형태를 이룬 듯 느껴졌다. 그 시간은 위키피디아의 링크들을 파고들 수 있는 시간이며, 울다가 웃다가를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는 시간이며, 어느 시대의 패션 아카이브를 구경하다가 갑자기 시를 두세 편 뚝딱 써 내려갈 수도 있는 시간이다. 어떤 일에 얼마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를 예측하는 능력이 부족한 나는 밤이 주는 '무한대의 시간'의 약속 안에서 걱정 없이 안온하고 완벽한 몰두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다 잠이 오면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밤을 닮은 세상을 오래도록 꿈꾼다. (상상해 보는 행위에는 본질적인 힘이 있다. 어떤 세상을 상상해 본다는 건, 무한한 평행우주 속 어느 지점에 초점을 맞춰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머나먼 그 세상과는 별개로, 나를 보채는 시계가 아주 많은 이곳에 발 딛고 선 나는 마치 끝나지 않는 마라톤 대회에 스프린터로 참가한 것 같다. 사실 내가 그리는 것은 어딘가 멀리 있는 상상 속의 세상이 아니라 다시금 마음껏 내달리는 짜릿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홀로 서랍을 뒤적이며 원하는 일에 자유로이 뛰어들던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