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를 맺으며
꾸준함.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끈기가 있다'는 뜻이다.
한결같지도, 부지런하지도, 끈기 있지도 않은 나는 생각했다. 이 견고하고 빛나는 낱말의 이면을 파헤쳐 보자고. 그 맹랑한 생각이 <이면> 창간호의 주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은는이와 은는지기들이 제각기 '꾸준함'의 이면을 탐구한 것을 엮은 것이 본 호다. 모범적인 꾸준함의 모습을 하지 않고 (혹은 못 하고) 그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것들을 포착하였다. 조심스레 건넨 고백에 나도나도, 하며 물밀듯 밀려오는 저 뒤편의 이야기들을 낚아채었다. 이를 편지, 사진, 시, 에세이 등 각자에게 가장 적합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표현하여 한데 모아보았다.
하지만 여러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진(zine)으로 엮여갈수록 어떤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쓸모 있나? 이것은 세상에 꼭 나와야 하는 창작물인가? 자꾸만 움츠러들고 의심했다. 그 질문에 확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 누구에게 가닿기는 할지, 가닿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발현이 되기는 할지, 결국엔 쓸모가 있을지.
그런데 어떤 희미한 힘이 자꾸 나로 하여금 이 이야기들을 놓지 못하게 했다.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우리의 이야기들. 그것도 항상 화려한 색채를 입진 않은, 비범한 전개를 갖추진 않은 이야기들. 매번 날카롭게 허를 찌르지는 못하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은 세상에 나올 가치가 없는가? 언어와 지성을 겸비한 자들의 걸출한 작품만 무대에 설 수 있는가? 나는 탁월한 문인이나 석학의 책들을 좋아하지만, 사실 나의 근간을 다져온 건 그들이 아니다. 세련되고 지적인 언어나 교양 있는 행동이 몸에 배진 못한 평범한 이들. 자주 서툴고 후회가 잦은 이들. 그들이 내 안의 어떤 것을 오래도록 빚고 다듬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도 소중하다. 더 똑똑해지길 항상 바라왔고 여전히 바라지만 어떤 순간들에서 얼핏 본다. 지성 너머로 무언가가 분명히 또 있음을. 나를 부끄럽게 하는 어떤 것이 저기 있음을.
그리하여 이 이야기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더 읽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의 경우, 엮은이로서 이 이야기들을 거듭 들여다보다 어느 익숙함을 눈을 한 번 더 비비고 다시 응시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마음에 들어찬 오랜 다짐을 읽다가 내 안도 한번 훑게 되었다. 희망과 극복의 서사 아닌, 그냥 거기서 멈추는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구겨버린 것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모래알 같아 바다 같은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게 되어 기쁘다.
마지막으로 친구가 보내주었던 필패하는 꾸준함의 한 기록을 싣는다. 오늘도 성공했든 실패했든, 저녁 땐 강가에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