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그래 재능이라고 할 수도 있지." 너무 꾸준해서 희미해진 어떤 노력. ⟪ 1호 | 꾸준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 ⟫
-- 이면을 펴내며 --
[ 1 ] 『 수련 대신 수면. 나의 (게으른) 요가 이야기 』
[ 2 ] ˖◛⁺˖ (벌써) 실패한 여러분의 새해 결심은?
[ 3 ] ♪ 듣는이가 🎼⇐
[ 4 ] 『 벼락치기의 신, xNFP의 필승법 』
[ 5 ] ˖◛⁺˖ '갓생' 말고 ‘내 삶’사는 이야기
미완성 일출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마음
[ 6 ] 『 꾸준한 당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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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원 씨는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로부터 정확히 일 년 후에 여동생이, 오 년 후에는 남동생이 태어났는데, 그중 여동생인 마상영 씨는 삼십여 년 후 나를 낳았다. 그러니까 마호원 씨는 나의 이모다.
올해 환갑을 맞은 그는 내가 태어나서 만나본 가장 유능한 일꾼 중 한 명이다. 푸른 용의 해에 태어난 그는 가히 전설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청소기를 소유해 본 적이 없고, 일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마이크 한 번 차본 적이 없다.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내 머리카락은 자주 호원 씨에게 묶이곤 했는데, 그가 빨간색 플라스틱 꼬리빗으로 내 두피를 밭 갈듯 갈아 한데 모은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쫌맬 때면 나는 두피에서 피가 나는 건 아닐지, 눈깔이 위로 까뒤집혀지는 건 아닐지 전전긍긍하곤 했다. 나물을 무칠 때도 호원 씨는 손아귀 힘이 곧 손맛이라며 강력하고 신속하게 나물 더미를 주무른다. 그러곤 기깔나게 맛있는 시금치 무침을 산만큼 만들어 낸다.
그러나 넘치는 힘만으로는 유능한 일꾼이 될 수 없다. 내가 삼십 년을 알아 온 호원 씨는 기복이 없고 꾸준하다. 뭐든 에둘러 가지 않고 정직하다. 그런 호원 씨가 세운 대들보 밑에서 나는 무구히 자랄 수 있었다. 누구는 그런 그에 대해 사람이 원체 단순해서, 성격이 털털해서 그런 거라고 대충 넘겨버릴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내가 아는 호원 씨는 그런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 싱크대 앞에 설 것이다. 너무 꾸준해서 희미해진 어떤 노력을 찬찬히 되짚어 보고 싶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일구어진 토양에서 자라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 가장 오래된 풍경 중 하나를 인터뷰로 옮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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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원, 상영, 민하, 그리고 나는 2월의 어느 날 하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평소에도 자주 모이는 우리는 서로에게 묻지도 않고 알아서 척척 음료 주문을 넣는다. 호원은 라떼, 상영은 아메리카노,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민하가 유모차에서 꾸벅 잠들고 진짜 대화는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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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집안일을 제일 열심히, 꾸준히 하는 사람이 이모여서 인터뷰 대상자가 되셨어요. 하루 일과가 보통 어떻게 되시나요?
호원: 내가 직장에 오래 다니다 퇴직을 했지, 손녀 육아를 하려고. 하루 일과가 그러니까 육아에 전념하는 거야. 오전에는 할아버지 (남편) 가 육아를 하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골프 연습을 갔다가 샤워를 하고 아침을 차릴 시장을 봐. 집에 와서는 손녀, 딸, 남편이 먹을 점심 준비를 하지. 손녀가 오기 전에 청소도 싹 하고.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손녀를 돌봐. 매일 걸레질을 한다고 볼 수 있지. 그다음엔 손녀한테 책도 읽어주고, 같이 놀아도 주고, 놀이터에 데려가고, 밖에 나가서 체험학습도 시키고. 그런 일들을 하다가 육아가 끝나. 퇴근을 하면 집에 와서 저녁 식사거리를 준비해서...
윤: 퇴근은 주로 몇 시에요?
호원: 보통 6시 반에서 7시에 퇴근을 한다고 보면 돼. 끝나면은 저녁 식사를 하고 부엌일을 하지. 정리할 것 정리하고, 반찬 옮겨 담을 것 옮겨 담고, 큰 냄비 다 씻어서 옮겨놓고, 음식들 쉬지 않게 보관해야 하니까 냉장고에 분리해서 집어넣고, 내일 먹을 거 뭐 있나 야채 박스 한번 보고. 그리고 밤에는 듀오링고¹ 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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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웃음) 너무 성실한 삶이다.
호원: 듀오링고를 하면서 손녀가 놀고 간 자리를 정리하지.
윤: 그러고 몇 시쯤 주무세요?
호원: 내가 유튜브 같은 거 좀 보다가 한 시쯤 자지.
¹ 무료 언어 학습 앱. 영어나 중국어처럼 널리 쓰이는 언어부터 스와힐리어나 나바호어 등 세계 각국의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 한국어 구사자는 영어만 학습이 가능하다. 호원은 2023년 5월부터 듀오링고로 영어 공부를 시작해 2024년 4월 현재까지 빠짐없이 매일 이어오고 있다. 영어 공부의 이유는 아래와 같다 (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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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85년도에 초등학교 교사 일을 시작했고 23년 초에 퇴직하셨죠. 낮에는 초등학교 교사 일을 하고, 출근 전후로는 집안일을 했잖아요. 하루에 교사 일은 몇 시간 하셨다고 볼 수 있죠?
호원: 여덟 시간.
윤: 그러면 어림잡아서, 하루에 집안일은 몇 시간 정도?
호원: 밥하고 반찬하고 애들 아침 먹이고 준비시켜서 학교 보내고 출근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출근 전, 새벽 6시부터 두 시간 정도 가사일을 했지. 오후 5시에 퇴근하면 바로 시장 봐서 저녁 준비하고. 그리고 청소 빨래 뭐 이런 거 저런 거 애들 집안일 보살필 것 하다 보면은, 그냥 밤 11시는 기본이지.
윤: 그럼 출근 전 두 시간, 퇴근하고 여섯 시간. 근데 저녁 먹는 한 시간 정도 뺀다고 생각하면, 가사일은 하루에 총 일곱 시간 정도 되네요.
호원: 그렇지.
윤: 그럼 뭐 투잡 뛴 거네~
호원: 그냥 잠을 조금 자지. 잠을 늘어지게 자질 않지.
윤: 아...
호원: 일찍 일어나는 건 나한텐 좀 힘든데, 난 좀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는 편이거든. 근데 직장 다닐 때 그럴 수가 없잖아. 그게 좀 스트레스였지.
윤: 이모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고요? 살면서 보질 못했는데. (웃음)
호원: 아니, 그러고 싶은 사람인데, 그럴 수 없잖아.
윤: 아, 그러고 싶은 사람. 완전 몰랐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았어.
호원: 원래 일찍 자진 않아. 그냥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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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듣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길게 마신다. 훅 들어온 잽에 맞아 다음 질문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이미 다 아는 얘기에 호원의 말투를 살짝 입혀 옮기면 인터뷰가 뚝딱 완성될 거라 믿었던 나의 오만함. 호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그 오만함을 뚫고 들어온다.
침착한 표정으로 준비해 온 다음 질문 대신 새로이 궁금해진 것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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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사실 이모부도 선생님이셨죠. 근데 이모부는 집안일 안 하셨죠?
호원: 집안일을 안 한 것보다는... 거기는 그래도 4시에 퇴근하고 와가지고 밥을 차려달라는 둥, 자기 손빨래할 것을 빨아달라는 둥, 다림질을 해달라는 둥, 그런 얘기는 안 했기 때문에 내가 다른 집안일에 더 전념할 수 있었지.
윤: 어쨌든.. 안 한 거네 (웃음)
상영: 자기 것까지 맡기진 않았단 얘기야. 완전 보수적인 사람은 자기가 놀고 와서도 밥 차리라 하고, 와이셔츠 맨날 다리라고 두고. 그럼 여자가 맨날 밥상 차려주고 다림질하고 해야 하는데, 그런 건 자기가 스스로 했단 얘기야.
윤: 아~
상영: 운동하고 와서 손빨래해야 할 것들 있잖아. 웬만한 남자 같은 경우 여자한테 다 맡겨버린단 말이야. 근데 이모부는 자기 스스로 했잖아.
호원: 그러니까 이모부는, 나랑 똑같이 돈 버는데.. 뭐 더 많이 번다 적게 번다가 아니었어, 우리는. 똑같이 벌었지. 근데 자기 혼자 논다는 게... 최소한의 양심으로 그걸 한 거야. 어쩌다 청소 한 번 해준다거나.
윤: 그러니까 해준다는 게, 사실 좀 웃기잖아.
호원: 그래서 언제는 '내가 도와줄게,' 해서, '그게 왜 도와주는 거야? 같이 해야 할 일이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안 한 것뿐이지. 그럼 내가 돈 번 것도 당신 도와준 거야?' 그랬어.
윤: (웃음) 그러면은 이모부가 그렇게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해서, 이모는 고마웠어요?
호원: 안 한 것보단 낫지.
윤: (웃음)
호원: 안 한 것보단 낫다, 이거지. 왜 그것밖에 안 해? 이렇게는 생각 안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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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이모가 살림에 취미가 있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힘든 점은 있겠지요. 집안일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힘든 건 뭐에요?
호원: 육체적으로 힘든 거는, 매일 시장을 보고 무거운 걸 들고 와야 하는 거. 옛날에는 택배나 배달이 없었으니까.
윤: 그럼 정신적으로 힘든 건 뭐에요?
호원: 뭘 먹을까, 생각하는 거.
윤: (웃음)
호원: 그리고 육체적으로 힘든 거 또 있어. 출근하기 전에 애들 맡겼다가 퇴근하고 애들 데리고 와야 하는 거. 그걸 매일 반복하는 게 힘들지.
윤: 집안일은 끊임없이 생겨나잖아요, 그러니까 그만둘 수 없잖아. 퇴근이란 게 없잖아. 조금이라도 안 하면 바로 티가 나고. 그래서 계속 해야 하는데 누가 알아주지도 않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서럽거나 화났던 적은 없었어요?
호원: 음..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서럽거나 화나는 건 없고. 그냥... 이건 나한테 주어진 책임이고, 내가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지. 책임 의식이 강한 거지, 거기에 근면함이 좀 보태진 거지. 그거는 타고난 거지.
상영: 책임감과 근면 성실은 타고났어.
호원: 그러니까 '그냥 주어진 거니까 한다,' 이렇게 생각했지. '내가 왜 이래야 돼,'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 다만 직장 다닐 때는 시간에 쫓기니까, 편하게 가사일 하고 싶다 생각했지. 지금은 퇴직하고 나니까 가사일 하는 게 좀 여유가 있지. 조금 이따 해도 되고. 근데 그때는 '조금 이따'라는 시간이 주어지질 않으니까, 빨리 해치워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어. 이걸 꼭 빨리 해야되겠다, 그런 생각 하는 게 힘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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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친 호원은 겨우 이런 것 갖고 인터뷰가 되겠냐며 걱정했다. 그 걱정은 일부 적중했다. 나는 인터뷰 녹취록을 들고 몇날 며칠을 강가의 진흙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사람처럼 보냈다. 몇십 년 동안 매일 봐온 풍경을 흔들고 헤집어 보며 건져 올릴 것이 있는지, 반짝이는 것이 있는지 오래도록 들여다봤다는 말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일상사의 급소를 급습해서 매몰된 진실과 아름다움을 구조'²해 보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그렇게까지 멋진 일에는 실패했다.
인터뷰를 읽고 또 읽으며 나는 자꾸만 호원의 멀티버스를 상상해 버렸다. K-장녀 대신 K-막내 호원을, 여자 대신 남자 호원을, 1964년 대신 2004년생 호원을, 대한민국 아닌 머나먼 땅에서 태어난 호원을, 좀만 더 이기적인 호원을. 그랬다면 인터뷰의 어느 부분이 달라졌을까? 꾸준함을 주제로 호원을 인터뷰할 일이 있었을까? 한동안은 그렇게 무한한 호원의 멀티버스를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그래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나의 호원이 존재하는 이 세계로 돌아왔다. 이 역시 그래야만 했기 때문이다. 호원에게, 아니면 내게 하는지 모를 말을 되뇌인다. 누구도 당신만큼 당신의 삶을 알지 못한다고. 내가 다녀온 당신의 그 모든 평행우주가 어떻게 생겨먹었든 나는 당신이 발붙인 이 우주에서 당신 옆에 서겠다고. 매일같이 그 우주의 강가에 나가 사금을 채취해 보겠다고.
² 이성복 - <고백의 형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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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칭찬하고 싶은 누군가의 묵묵한 꾸준함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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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계 찾기 ☀︎
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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